[기고] 가족 권하는 사회
[기고] 가족 권하는 사회
  • 전북투데이
  • 승인 2020.12.20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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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임 부산 저출산 극복 사회연대회의ㆍ뉴스1 부산경남 대표

신입 기자와 점심식사를 하는 자리.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여자 친구 있어요?”
“아-예! 저는 비혼주의자입니다.”
“아... 비혼주의... 그런 생각하는 거 부모님도 알고 계세요?”
꼰대의 발상이라 해도 할 수 없다. 진부하게도 내 머리에는 그의 부모가 스쳐갔다.
혹여 아들의 생각을 안 후 실망할지도 모를 그의 부모, 내심 걱정이 되었다.
“아직 말씀 못 드렸습니다. 제가 외아들이라 기대하고 계셔서요.”

그랬구나. 들뜬 기대감을 품고 있다가 뒤통수 맞을지도 모를 우리 세대의 현실 같아서 갑자기 웃픈 웃음이 났다. 이런 일도 있었다. 아직 미혼인 서른 살 딸과 결혼 얘기를 나누다가 씁쓸하게 웃었다는 선배의 말. “엄마. 결혼식에 혼주석이란게 있잖아요. 결혼의 주인공은 우리들인데 왜 부모가 혼주석에 앉죠? 제 결혼식의 혼주는 저니까 결혼은 알아서 할게요. 하게 되면 엄마 아빠는 꼭 초대할게요!” 자식의 결혼식도 초대받아야 갈 수 있을지 모른다며 선배는 허탈한 웃음을 전했다.

결혼관도 달라진 이 시대에 개인적 문제인 출산을 강요한다는 건 이제 난센스인 세상이 왔다. “그래도 아이는 있어야지! 나중에 후회 해.” 이런 구태의연한 멘트에 집중하는 젊은이는 어디에도 없다. 그런 시대가 오고 말았다.

‘출산율 최저, 미래세대 부양할 인구 없다.’ 헤드라인은 그저 헤드라인 일 뿐이다. 아이 낳고도 잘 살 수 있으면 낳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낳지 않을 것이라는 게 요즘 젊은이들의 명쾌하고도 명분 있는 논리다. 자녀 양육은 곧 돈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진 세상은 개인의 삶과 행복을 위해 과감히 자녀 출산을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상대적 박탈감 심한 경쟁의 시대에 그 등살 속으로 아이까지 낳아 밀어 넣고 싶지 않다는 말에 공감도 간다.

그럼에도 기성세대는 힘든 고비마다 아이가 있어야 위로받을 수 있으니 ‘가족’을 만들라고 강요한다. 남편. 아내. 아이까지 다 갖춘 ‘가족 권하는 사회’가 기성세대들의 경험적 논리인 셈. 그러나 짚어보자. 출산에 대한 정서적 강요는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출산이나 자녀양육에 대한 생색내기용 보조가 아니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개인의 삶이 보장된 안정적인 사회시스템만이 젊은 세대들을 설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출산율을 늘리기 위한 정책은 단순히 출산에 대한 접근이 아니라 교육, 경제, 문화, 사회시스템을 병합해 고민되어져야 한다. 단순한 미봉책이나 뜬구름 잡는 식의 감성적, 정서적 대안들은 더 이상 젊은이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수 없다.

아동들의 인권보장을 위한 ‘보편적 출생등록제’ 다큐 취재를 위해 독일에 갔을 때다. 결혼이라는 법적 제도 아래에서만 안정적으로 자녀의 출생이 등록되는 우리의 현실과 달리 그들은 법이라는 제도권 밖에서 태어난 미혼모 자녀의 보호에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부부라는 법적 테두리를 벗어나 어떤 형태로 태어난 아이든 서류상의 출생등록과 상관없이 의료권과 교육권을 최우선으로 보장하며 국가의 미래로 키워내고 있었다.

프랑스 역시 법적으로 결혼하지 않은 남녀 사이의 신생아도 출생등록의 기회를 보장함으로써 출산율 증가의 변화를 만들어냈다. 출생등록이라는 사회적 제도보다 인권, 즉 생명의 권리를 먼저 보호해야 한다는데 모두 이견이 없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활동해 온 한 일본여성이 제공받은 정자로 아이를 낳아 화제가 됐다. 아빠 없는 아이 출산에 대한 이야기로 사회가 소란스러웠다. 부모가 함께 하는 것이 가족 행복의 당위론처럼 여겨져 온 세상 속에서 어떤 부모는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는 조심스런 뒷말도 들려왔다.

‘부부가 아이를 낳고 키우는’ 평범한 키워드들이 인식의 변화들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옛날 옛날에 남녀가 결혼해 부부가 되고 아이 낳아 키우고 잘 살았대요!’라는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절대적 드라마의 질서는 이제 당연했던 일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하기 전에 낳지 않겠다는 신세대와의 충돌지점을 정확히 가려내보자. 어느 지점에서 갈등하고 있는가. 달라진 정서인가? 경제적 현실인가? 서로 민낯을 마주하고 불편한 진실을 함께 꺼내보자. 탁상공론식으로 만든 보여주기식 대안이 아니라 진정한 해답은 거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애들은 다 제 밥줄 타고 난다.”는 구태의 논리는 잊자. 객관적 시점으로 돌아가 함께 출산을 논하고 미래를 논하자. 출산율의 위기. 모두가 두렵다. 그러나 그래도 다행인 건 모두가 염려하는 걱정을 씻어 줄 공통된 정서는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아기의 맑고 청량한 웃음소리를 듣고 우리가 느낄 편안함과 삶의 위로, 그 소리에 누구라도 가슴이 설레는 한 희망을 버리기는 아직 이르다. 그나마 참으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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