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DJ의 '평생 동지' 故이희호 여사, 민주주의를 위한 한 평생
[화보]DJ의 '평생 동지' 故이희호 여사, 민주주의를 위한 한 평생
  • 한종수 기자
  • 승인 2019.06.13 16: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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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평화센터가 12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생전 모습을 공개했다. 사진은 1971년 이 여사가 7대 대선 당시 장충단공원 유세장에 등장해 시민들에게 인사하는 모습.(김대중평화센터 제공)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영원한 동반자인 이희호 여사가 10일 별세했다. 향년 97세.

이 여사는 그간 노환으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오다 이날 병세가 악화돼 오후 11시37분 끝내 눈을 감았다.

1939년 이 여사(오른쪽)의 이화여고 4학년 당시 모습.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1950년 이 여사가 서울대 사범대 시절 교복과 교모를 착용한 모습.(김대중평화센터 제공) 

 

1950년 6.25전쟁 당시 이 여사(왼쪽 세 번째)가 피난지 부산에서 대한여자청년단을 결성, 외교국장을 맡아 대구에서 합숙하던 시절 여청 간부들과 군부대 위문공연을 갔던 모습.(김대중평화센터 제공) 

1922년 유복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이 여사는 이화여전 문과와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한 뒤 미국 유학을 다녀와 이화여대에서 강의를 하는 등 당대 여성으로선 보기 힘든 인텔리였다.

1956년 이 여사가 미국 유학 당시 1시간에 1불을 받고 전기코일 감는 아르바이트를 했던 밀워키의 공장 동료들에게 수복강녕(壽福康寧) 이라는 글씨를 써 선물한 모습.(김대중평화센터 제공)

 

1959년 이 여사(앞줄 맨 오른쪽)가 YWCA 총무 당시 멕시코에서 열린 세계여성대회 참석한 모습.(김대중평화센터 제공) 

대한여자청년단(YWCA) 총무 등 1세대 여성운동가로 이름을 날리던 이 여사는 가난한 정치 재수생이었던 DJ와 만나 1962년 결혼한 뒤 지난 2009년 DJ가 서거할 때까지 47년간 "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를 살아왔다.

1960년대 말 이 여사(왼쪽 두 번째)가 공동찰설자인 황신덕 여사(가운데) 등 여성문제연구회 회원들과 함께 있던 모습.(김대중평화센터 제공) 

 

1962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의 결혼식 모습.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과 결혼한 후 김 전 대통령 함께 정치적 고락을 함께 했다. 1972년 김 전 대통령의 미국 망명, 1973년 납치사건, 이후 가택연금과 투옥, 1980년 내란음모 사건으로 인한 수감, 미국에서 귀국한 뒤 가택연금 등 정치적 고난을 함께 견뎌냈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이 사형 판결을 받았을 때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는 등 구명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1973년 이 여사가 납치된 지 5일 만에 돌아온 김 전 대통령을 반기는 모습.(김대중평화센터 제공) 

 

1971년 이 여사가 7대 대선에 출마한 김 전 대통령에게 음료수를 건네는 모습.(김대중평화센터 제공) 

 

1978년 이 여사가 김 전 대통령이 형집행정지로 가석방 된 뒤 동교동 자택에서 뉴욕타임스, 아사히 신문을 비롯한 내외신과 기자회견을 할 당시 동석한 모습.(김대중평화센터 제공) 

김 전 대통령이 네 번째 도전한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이 여사는 70대 후반의 고령임에도 아동과 여성 인권에 관심을 두고 '사랑의 친구들', '여성재단'을 만들어 활발한 대외 활동을 했다.

1979년 이 여사가 긴급조치 9호의 해제로 김 전 대통령의 가택연금이 해제되자 기뻐하는 모습.(김대중평화센터 제공) 

 

1981년 이 여사가 아들들과 함께 청주교도소에 수감된 김 전 대통령과 면회하는 모습.(김대중평화센터 제공) 

 

1982년 전두환 정권 당시 이 여사와 김 전 대통령이 미국 망명길에 올라 일반승객이 전혀 없는 노스웨스트 항공기에서 이륙을 기다리는 모습.(김대중평화센터 제공)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의 대통령 재직 중 2002년 3남 홍걸씨, 차남 홍업씨가 연달아 구속되면서 참담함을 맛봐야 했고, 퇴임 직후엔 '대북송금 특검'으로 또 다시 어려움을 겪었다.

1987년 6.10 시민항쟁 당시 자택에 갇힌 이 여사와 김 전 대통령이 장독대에 올라 담장 밖 시민들을 환영하는 모습.(김대중평화센터 제공) 

 

1976년 이 여사가 3.1민주구국선언 재판일 당시 피고인 가족들과 함께 보라색 한복을 입고 참석한 모습.(김대중평화센터 제공) 

 

1976년 이 여사가 ‘양심범가족협의회’ 조직을 만들고 ‘옥중에 있는 남편들의 석방을 기원하는 기도회’를 연 모습.(김대중평화센터 제공) 

김 전 대통령이 2009년 8월 서거하면서 47년에 걸친 김 전 대통령과의 부부생활은 마감했지만, 매년 노벨평화상 수상 축하 행사를 개최하는 등 김 전 대통령의 유업을 잇기 위해 힘을 쏟았다.

1985년 이 여사가 미국 망명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LA 고별강연을 열고 고별사를 하는 모습.(김대중평화센터 제공) 

 

1971년 이 여사가 김 전 대통령이 7대 대선에 출마했을 당시 미국을 함께 방문해 닉슨 미국 대통령의 부인 패트리샤 닉슨과 백악관에서 만난 모습.(김대중평화센터 제공) 

 

1987년 이 여사가 이한열 열사 장례식 날 거리행진을 하는 모습.(김대중평화센터 제공) 

2011년 12월에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조문을 위해 평양을 방문하는 등 햇볕정책의 계승을 위해서도 활발한 활동을 했다.

2000년 이 여사가 제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 전 대통령,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나란히 선 모습.(김대중평화센터 제공) 

 

2011년 12월 이 여사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빈소를 찾아 상주였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악수하는 모습.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2009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빈소에서 이 여사가 북한 특사 조의 방문단을 맞이하는 모습.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이 여사가 별세함에 따라 김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에도 이어져왔던 '동교동 시대'도 완전하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11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장례식장에 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이 여사는 지난 10일 97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 여사가 12일 오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을 하고 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고 이희호 여사를 애도하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보낸 조화와 조전을 전달하기 위해 12일 판문점 북측 지역인 통일각에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통일부 제공)

 

1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희호 여사의 빈소에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조화가 놓여있다. 

유족으로는 김홍업, 홍걸 2남이 있다. 장남인 김홍일 전 민주당 의원이 이 여사에 앞서 지난 4월20일 별세했다. 아들 가운데 홍걸씨가 DJ와 결혼해 낳은 친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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